물장군, 부성애의 상징...이유는?
‘물속의 장군’이라는 이름처럼 위풍당당한 자태를 자랑하는 곤충, 물장군. 그런데 이 거대한 수서곤충이 요즘 부성애의 상징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환경부는 올해 5월 ‘가정의 달’ 멸종위기종으로 물장군을 선정했고, 그 배경에는 감동적인 생명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고 합니다.
알을 낳는 건 암컷, 그러나 키우는 건 수컷
자연계에서 새끼를 돌보는 역할은 대개 암컷의 몫입니다. 하지만 물장군은 예외입니다. 6월 초, 물가의 부들 같은 식물에 알이 줄지어 붙어 있는 모습이 관찰됩니다. 이 알들을 지키는 건 바로 수컷 물장군. 암컷은 알을 낳자마자 떠나지만, 수컷은 그 자리를 지킵니다.
10일 이상 먹지도 않고, 물방울로 알에 수분을 공급하며 햇빛을 가려주는 행동은 마치 한 마리의 '아버지'처럼 보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행동이 단순한 본능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라고 분석합니다. 물장군은 큰 체구를 갖추기 위해 커다란 알에서 태어나야 하고, 그만큼 산소 공급이 풍부한 물 밖에서 부화하는 방식이 유리합니다. 대신, 외부 환경에 노출된 알을 수컷이 돌보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암컷의 공격도 막아낸다?
흥미로운 점은 암컷 물장군이 가끔 알을 다시 찾아와 먹어치우는 동종포식을 시도한다는 점입니다. 이때 수컷은 알을 감싸며 방어합니다. 단순히 보호 차원을 넘어서, 새로운 교미를 유도하기 위해 수컷의 '육아'를 방해하는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생태연구팀은 “이런 사례는 곤충계에서 드물고, 조류나 포유류에서나 볼 수 있는 고도의 번식 전략”이라며 물장군의 진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부성애의 거울
한때 논과 개울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물장군은 농약 사용과 습지 파괴로 급속히 줄어들었습니다. 현재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복원과 방사 활동이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삼성디스플레이 생태복원단은 최근 충남 아산에서 인공 증식한 70여 마리의 물장군을 자연에 방사하며, 생태계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고 합니다.
물장군을 들여다보면, ‘가족을 위한 헌신’이란 말이 곤충 세계에서도 통용될 수 있음을 실감합니다. 작고 물속에 숨은 생물이지만, 이들이 보여주는 아버지의 본능은 인간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작지 않습니다. 생명의 무게, 가정의 의미, 그리고 돌봄의 힘—5월에 더욱 깊이 되새겨볼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