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을 거닐다 보면 잔디밭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나무길이 눈에 들어옵니다. 많은 이들이 이 길을 단순한 산책로쯤으로 여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나무길은 단순한 조경이 아니라, 도시 속에 묻혀 있던 역사의 경계선을 다시 불러낸 복원의 상징입니다. 이 길의 이름은 ‘덕수궁 담길’, 그리고 그 아래 깔린 시간은 1910년입니다.
1900년대 초반까지 지금의 서울광장은 덕수궁의 일부였습니다. 고종황제가 거처했던 이 궁은 대한제국의 자존을 상징하는 공간이었고, 그 담장은 궁의 권위를 지키는 물리적 경계이자 정신적 울타리였습니다. 그러나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에 강제로 병합되면서 덕수궁의 영역은 강제로 축소되고, 궁을 감싸던 담장 또한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게 궁궐의 일부였던 이 땅은 '서울광장'이라는 이름의 공공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죠.
하지만 과거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흔적은 땅에 남았고, 도시의 기억 속에 희미하게나마 존재해왔습니다. 그리고 2024년, 서울시는 이 역사적 공간을 시민과 다시 연결하기 위해 ‘덕수궁 담길’을 조성했습니다.
이 나무길은 1910년 당시 덕수궁 담장이 있던 실제 위치를 따라 설치되었습니다. 길이 68미터, 폭 4미터의 이 길은 국내산 낙엽송 목재로 만들어졌으며, 단순한 보행로가 아닌 기억의 통로로 기획되었습니다. 도시 한복판에서 역사의 흔적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입니다. 나무로 된 이 담장은 더 이상 궁궐을 외부로부터 막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와 현재, 권위와 시민, 단절과 회복을 잇는 상징적인 장치로 기능합니다.
나무판 위에는 ‘덕수궁 담길’이라는 문구와 함께 당시의 공역을 설명하는 작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지나가는 시민들이 이 길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서울도서관과 시청, 원구단 등 서울의 근현대사를 상징하는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이 길은 단지 공간의 복원에 그치지 않고 시간을 잇는 역사 해설서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이 사실은 궁궐의 일부였고, 그 공간이 도시 개발과 식민지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복원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도시란 무엇이며, 기억이란 어떻게 보존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 말입니다.
‘덕수궁 담길’은 그에 대한 하나의 해답처럼 존재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을 물질로 복원하고, 사라진 담장을 시민의 발걸음 위에 되살리는 방식. 그것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오늘 사이를 걷는 시민적 성찰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오늘 서울광장을 찾는다면, 그저 잔디밭 위를 걷지 말고 이 나무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세요.
지금 당신이 걷고 있는 이 길은, 100년 전 대한제국의 마지막 궁궐을 감싸고 있었던 담장이 있던 자리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과거를 품은 도시가 시민과 함께 호흡하는 기억의 산책로입니다.